가끔은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고, 평소 좋아하던 일들도 시큰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하다가도 문득 드는 생각.
혹시 나, 지금 우울한 걸까?
이럴 땐 괜히 복잡하게 고민하기보다, 조용히 앉아서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게 먼저입니다.
바로, 우울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보는 것이죠.
간단하지만 꽤나 명확하게, 지금 내 감정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려주는 도구입니다.
우울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란?
자가진단이라고 하면 뭔가 전문적이고 복잡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PHQ-9, CES-D, BDI 같은 공신력 있는 평가 도구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무료 제공되고 있고,
국가트라우마센터나 지역 보건소 홈페이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테스트는 정신과에서 진단의 참고자료로도 쓰일 만큼 신뢰도가 높고,
우리 같은 일반인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가볍게 점검해보기에 적당한 구조로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항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최근 2주 동안 기분이 가라앉은 적이 자주 있었다.”
“흥미나 즐거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잠을 자는 게 어렵거나, 너무 많이 잤다.”
“무기력하고 피곤함이 자주 느껴졌다.”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졌다.”
질문에 ‘거의 없다’부터 ‘거의 매일 그렇다’까지의 응답을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감정의 패턴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정직한 거울 같은 시간입니다.
진단 결과 해석과 내 감정과의 거리 좁히기
테스트 결과는 숫자로 나오지만, 중요한 건 그 숫자보다 느낌입니다.
총점은 0점에서 27점 사이로 계산되며, 점수에 따라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0~4점: 우울 증상 없음
5~9점: 가벼운 우울감
10~14점: 중간 수준의 우울감
15~19점: 비교적 뚜렷한 우울 증상
20점 이상: 매우 심한 우울 증상 (전문 상담 필요)
막상 체크해보면, 본인도 예상치 못했던 점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 꽤 힘들었구나’ 하고요.
이런 순간이 바로, 내 마음과 진짜로 연결되는 첫 시작일 수 있습니다.
결과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만약 죽고 싶다는 생각이나 극단적인 감정이 자주 든다면,
그건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심리상담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요즘은 앱으로도 간단히 예약할 수 있는 전문 상담 서비스가 많습니다.
상담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저도 처음엔 ‘우울증’이라는 말 자체가 무겁고 낯설었습니다.
겉으론 잘 지내는 것 같았고, 일도, 인간관계도 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가 길고, 아침에 눈뜨는 게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 많아졌어요.
예전 같으면 즐겁게 참여했을 모임도 피하게 되고,
가끔은 “이렇게까지 지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러다 우연히 PHQ-9 자가진단 테스트를 해보게 됐고,
처음 받은 점수가 16점이었습니다. 꽤 높은 점수였죠.
“내가 왜 이 점수가 나왔지?” 싶었지만,
그 결과를 마주하는 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마음속 짐이 조용히 수면 위로 떠오른 느낌이었거든요.
그날 이후 저는 마음 건강도 몸처럼 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간단한 것부터 시작했어요.
아침에 햇볕 드는 창문 앞에 5분만 앉아 있기,
퇴근 후 좋아하는 향의 샤워젤로 천천히 샤워하기,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나 혼자 카페 타임’을 가지며 일기 쓰기.
이 작은 루틴들이 쌓이니 마음이 조금씩 풀렸고,
결국 상담센터에도 자연스럽게 문의하게 되었어요.
상담은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거나 특별한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준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위로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막상 해보면 내가 하는 말들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풀릴 수 있어요.
내 마음을 지키는 작은 루틴들
자가진단 이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세요.
1.매일 햇빛을 15분 이상 쬐기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은 햇빛을 통해 분비되고, 기분 안정에 큰 영향을 줍니다.
2.하루 한 끼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 먹기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챙긴다는 감각이 쌓입니다.
3.수면시간만큼은 타협하지 않기
뒤척이며 밤을 보내는 습관은 감정 회복력을 떨어뜨립니다.
4.일기 쓰기, 감정 기록하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도 글로 적으면 흐름이 생기고, 스스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한마디입니다.
“나를 위해,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오늘 하루를 잘 버틴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해주세요.
"수고했어."